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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사항
[신규 서비스] 박정희정권_1970년대 유신이전 민주화운동 서비스 개시
  • 등록인 soleer@kdemo.or.kr
    등록일 2024.11.08
    조회수 104
  • <민주화운동사전>


    ‘박정희정권_1970년대 유신이전 민주화운동'
    2024.11.13. 서비스 개시

     

    <민주화운동사전>이 11.13 전태일 열사의 민주 정신을 기념해 ‘전태일분신사건’을 포함한 박정희정권_1970년대 유신 이전 민주화운동 사전항목(27개) 서비스 운영을 시작합니다.




    ‘10.15위수령’ 대통령특별담화발표, 대한뉴스 제849호, 국가기록원

     

    1970·1971년은 민주화운동사에서 매우 역동적인 시기입니다. 이 두 해는 재야운동의 조직화, 기층 민중운동의 원형, 대학민주화 요구로 이어지는 학생운동 등 한국민주화운동의 중요 특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한다는 점에서 , 정권 차원에서는 1972년 폭압적인 유신체제 수립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이 시기 저항의 세기와 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사전>을 통해 1970·1971년의 민주화운동 역사 현장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971년 선거투쟁

     

    1971년은 대선(4.27), 총선(5.25)이 치러진 해입니다. 1969년 삼선개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해진 1971년 4.27대선은 정부 여당의 금권, 관권선거, 투개표 부정행위 등으로 치러졌고 이에 선거 직후부터 재야와 민주인사, 청년, 학생운동 세력은 4.27대선 원천 무효 및 즉각적인 재선거 요구와 함께 5.25 총선을 거부하는 민주수호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좌) 제7대 대선 후보자들의 선거유세 현수막이 걸린 거리
    (우) 박정희대통령의 3선을 알리는 기사(경향신문, 1971.4.29.)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 청년, 재야·종교세력들은 분산된 조직을 결집해 ‘민주수호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합니다. 재야조직의 기원이 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주수호청년협의회, 학생운동연합체인 전국학생연맹, 그 외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 등이 대표적입니다.

     

     


    학원병영화반대운동

     



    (좌)제1회전국대학교교련실기대회 행진
    (우)손을 흔드는 박정희대통령 내외 (국가기록원)

     


    1971년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교련반대운동의 해’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이후 한반도 안보위기를 이용해 학생군사훈련을 강화하고 대학·고교 군사교육(교련)을 부활시켜 학생저항운동을 억누릅니다. 이에 대학생들은 군사교육 =민주의식 말살=학원병영화 의도로 비판하고 대대적인 교련반대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좌)고대생들의 교련철폐시위
    (우)최루탄 자욱한 서울대 정문 앞 교련반대시위 현장(경향신문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0.15위수령과 국가비상사태 선언

     



    (좌)서울일대 위수령 발동(1971.10.15.경향신문)
    (우)(서승·서준식)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사건(경향신문사)


    (좌)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경향신문사)
    (우)국가비상사태선언(1971.12.6.경향신문)


    1971년 학생들의 교련반대운동과 재야 민주세력의 민주수호선거투쟁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에 압박이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서승·서준식)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사건(1971.4.20.), 서울대생내란음모조작사건(1971.11.12.) 등의 공안사건, 1971년 10월 15일 서울 일대 ‘위수령’을 선포해 무력으로 학생운동을 진압합니다. 더 나아가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 선언’, ‘국가보위에관한특별법’(12.27)을 제정해 국민적 저항을 ‘국가긴급권’으로 무력화하였습니다.

     

     


    전태일 분신과 성장하는 민중운동  

     

     


    (좌)전태일의 분신기사(1970.11.14.경향신문)
    (우) 전태일열사정신계승전국노동자대회(1988.11. 경향신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70년 11월 13일은 한국 기층민중운동의 효시인 '전태일 분신'으로 기억되는 날입니다. 평화시장의 노동자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한국사회운동사에서 노동 권리주체를 각성시킨 시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오적, 다리지필화사건’,‘김진수 사망사건’‘광주대단지사건’,‘인턴레지던트파동’,‘언론자유수호선언(1971)’, ‘KAL빌딩방화사건’‘사법파동’, ‘국공립대학교수자주화운동’‘천주교원주교구부정부패추방운동’ 등 1970·1971년 사이 폭발적으로 발생한 민중운동의 현장을 <민주화운동사전>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에 앞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박정희 정권의 폭압성과 이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민주화운동사전>을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한국민주화운동의 교과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만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