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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새벽지사건

박정희정권기 > 유신체제 후기 > 긴급조치 9호기 반독재민주화운동
'김지하 양심선언'을 수록한 총 32쪽 분량의 <새벽> 1호(신동호 제공)
유형
사건
분류
학생운동
동의어
이화여대 《새벽》지 배포사건
유사어/별칭/이칭
해당사항 없음
영어표기
the Ewha Womans University Saebyuk Pamphlet Incident
한자표기
梨花女大새벽誌事件
발생일
1975년 10월 10일
종료일
1975년 10월 10일
시대
박정희정권기 ‣ 유신체제 후기 ‣ 긴급조치 9호기 반독재민주화운동
지역
서울특별시

개요

1975년 10월 10일 이화여자대생 3명이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가 구속된 사건이다. 이들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선언문과 김지하(金芝河)의 ‘양심선언’ 등 비공개 유인물을 수록한 32쪽 분량의 <새벽>이라는 소책자를 연세대, 이화여대, 서울대 등에 배포하며 반유신 투쟁을 전개했다.

배경

1975년 4월 10일 이화여대 정문의 휴강 공고문(경향신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정희 정권은 1975년 5월 13일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엄단하는 내용의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유신헌법에 대한 개정, 폐지를 주장하거나 청원, 선전, 선동하는 것은 물론 그 사실을 전파하거나 그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소지하는 행위까지 긴급조치 9호에 저촉됐다. 여기에는 미수, 예비, 음모도 포함됐다. 긴급조치 9호 위반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원천봉쇄된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은 물론 학생운동도 기약 없는 침체에 빠졌다. 집회, 시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저항하는 길을 암중모색했다. 그 방법의 하나가 이른바 ‘지하유인물’이었다.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제작해 사람이 없는 밤이나 새벽에 몰래 교내 강의실이나 화장실 등에 놓아둠으로써 제작·배포자의 신변 노출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긴급조치 9호 하의 첫 지하유인물사건은 1975년 6월 29일 중앙대학교생 4명이 구속된 중앙대시론정보사건이다. 이어서 9월 23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2천 수도인의 함성’ 유인물 배포 사건으로 2명이 구속됐다. 10월 19일 흥사단아카데미 김지하양심선언배포사건이 일어났다. 이화여대새벽지사건은 1975년 대학가에서 등장했던 지하유인물사건의 하나였다.

원인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민청학련 무기수 김지하가 석방 27일 만인 3월 13일 재구속됐다. 혐의는 반공법 4조 2항(북괴찬양고무) 위반이었지만 ‘인혁당사건주)001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내용의 옥중수기 ‘고행… 1974’를 《동아일보》에 게재한 것이 박정희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결과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검찰은 반공법 위반의 증거로 ‘장일담’과 ‘말뚝이’의 작품 구상을 담은 그의 옥중 메모를 내세웠다. 당시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수사기관의 이런 모략과 조작에 맞서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양심선언을 이용했다. 김지하도 자신의 ‘양심’을 감옥 바깥의 김정남(金正男), 조영래(趙英來) 등과 비밀리에 소통하면서 ‘선언’으로 완성했다. 하지만 김지하의 양심선언은 국내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 긴급조치 9호 위반이기 때문이었다. 국내 재야 진영은 외국 매스컴을 통해 공표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해 8월 4일 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협의회’ 소마 노부오(相馬信夫) 주교에 의해 김지하의 양심선언 전문이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돼 처음 발표됐다.주)002 그와 함께 김지하 구명운동이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양심선언문이 국내로 역수입돼 전파되면서 이른바 ‘김지하 양심선언 배포사건’이 줄을 이었다.

전개

<새벽> 1호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 첫 쪽과 마지막 쪽(신동호 제공)

1975년 10월 10일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 32쪽짜리 소책자 <새벽> 1호 100여 부가 살포됐다. 간밤에 누군가가 몰래 화장실 등지에 놓아둔 것이었다. ‘이대(梨大) 새벽회’ 명의로 된 이 소책자에는 김지하의 양심선언 전문과 별도의 후기, 양심선언 원고 입수 경위 등이 실려 있었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 이 글을 보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략이 지금 나에게 들씌워지고 있다. 박 정권의 억압자들은 나를 가톨릭에 침투한 맑스·레닌주의자로, 민주주의를 위장한 공산주의 음모가로 투옥하였다. 이제 곧 나를 교활, 음험한 공산주의자로 영원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낙인찍기 위한 재판 놀음이 벌어질 것이며 그 결과 나는 이 땅에서 만들어져 온 숱한 관제 공산주의자의 대열에 끼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해두거니와 이것은 나 개인에 대한 모략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민주회복 전체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투쟁하는 신구 교회에 대한 중상모략 소동의 일환이며…

이렇게 시작된 김지하 양심선언 전문이 26쪽에 걸쳐 수기로 또박또박 필경돼 있었다. 이어서 ‘이화여대 침묵하는 다수를 대신하여 새벽회 편집인 일동’의 이름으로 후기가 실렸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여러 가지를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김지하 시인은 현재 사형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강압으로 학원에서 쫓겨난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민중은 환상에 속으면서 점점 비참한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경제는 이미 파탄 상태에 이르고, 학원은 병영화되고 사회는 점차 황폐해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제반 현상의 궁극적인 책임은 자기들의 사복만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특권층,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에게 물어져야 한다는 것을,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책임을 느끼고 현 정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느끼지 않을 때, 우리들이 그들에게 그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그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자유를 억압하고, 거짓 환상으로 민중을 속일 때 우리는 마땅히 그 폭력과 억압, 거짓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의무조차 있다는 것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실입니다. 진실이란 침묵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시대의 모순을 지적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자 하는 한 시인의 진실이, 거대한 권력기관의 폭력으로 인하여 무참하게 짓밟혀지고 유린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그저 묵묵히 침묵의 미덕만을 강요당할 수 없습니다. 외쳐야 할 때 침묵을 지키는 것, 그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확신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선포 이후 그 기능을 모조리 상실해 버린 언론 출판 기관들, 철저히 봉쇄된 집회, 결사의 자유와 도처에 번뜩이는 감시의 눈초리들, 무서울 정도로 악화하고 있는 국제적인 고립현상, 사회에 만연하는 무관심 무기력함, 그 속에서는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믿어야 하는 궤변과 맹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눈을 뜨고도 잠이 든 척해야만 하는 소름 끼치는 압박이 있을 따름입니다. ‘너희들의 행동은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라고 말하지는 마십시다. 이 모든 악순환의 장본인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라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서 영구권력을 구가하는 바로 그들입니다. 학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1975년 10월
–이화여대 침묵하는 다수를 대신하여 새벽회 편집인 일동-주)003

뒤표지에는 양심선언이 나온 과정을 소개했다. ‘5월에 씌어진 양심선언은 즉각적인 보복에 대한 주위의 우려 때문에 8월 5일까지 발표되지 못했고, 종이는 그가 허위진술, 공산주의자임을 자인하는 자백을 강요받던 3월 중에 감옥 관리에게 훔친 것이며, 글자 한 자 한 자를 시멘트 바닥에 간 칫솔로 새겨나갔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새벽> 1호의 후기(왼쪽)와 미리 작성한 초고(신동호 제공)

이 유인물은 이화여대 운동권 3명에 의해 제작, 배포된 것이었다. 이념서클 ‘새얼’ 출신 국문학과 4학년 정선자(丁善子), 사회학과 4학년 이형랑(李熒娘)과 민속극연구회 소속 국문학과 4학년 정경임(鄭敬姙)이었다. 이형랑은 새얼과 흥사단아카데미 양쪽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졸업을 앞둔 이들은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재일한국민족통일연합 기관지 《민족시보》를 통해 입수했다. 이형랑의 재일동포 친구를 통해서였다. 이를 읽은 정선자는 피가 역류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는 김지하 시인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형랑, 정선자는 수사기관에 노출된 신분이라 운신이 어려웠다. 노출되지 않은 사람과 장소를 찾던 중 합류한 이가 정경임이었다.

세 사람은 정경임의 자취방에서 필경과 등사, 제본 등의 모든 작업을 마친 뒤 국문학과가 졸업여행을 떠나는 10월 10일 새벽 이화여대, 연세대, 서울대 화장실 안에 <새벽>지를 몰래 살포했다. 이들의 거사는 미제사건이 될 뻔했으나 뒤이어 터진 흥사단아카데미김지하양심선언배포사건 수사 과정에서 꼬리가 잡혀 사건화됐다. 이형랑, 정경임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1976년 8월 석방됐다. 뒤늦게 검거된 정선자는 2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받고 복역하다 1977년 3월 만기출소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제적된 이들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긴급조치가 해제된 뒤인 1980년 졸업했다.주)004

결과/영향

이화여대새벽지사건은 긴급조치 9호 시기 반유신운동의 한 방식이었던 지하유인물사건의 하나다. 이후 흥사단아카데미김지하양심선언배포사건, 서강대학교 ‘자유서강’ 유인물 배포사건, 계명대학교 김상진 유서 배포사건 등 지하유인물 사건이 줄을 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김지하 양심선언의 실체를 대학가에 처음 알림으로써, 김지하 시인에 대한 국내외 구명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001
인혁당재건위조작사건의 당시 명칭 
주)002
김정남, 《진실, 광장에 서다》, 창비, 2005, 130쪽. 
주)003
이대 새벽회, <새벽> 1, 1975. 27-28쪽. 
주)004
신동호, 《70년대 캠퍼스: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청년들의 이야기》1, 도요새, 2007, 236쪽. 
멀티미디어
  • <새벽> 1호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 첫 쪽과 마지막 쪽(신동호 제공)
  • <새벽> 1호의 후기(왼쪽)와 미리 작성한 초고(신동호 제공)
  • 1975년 4월 10일 이화여대 정문의 휴강 공고문(경향신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양심선언 관련 서신]
  • 이화여대 "새벽"지 배포사건 사건개요
참고문헌
  • 이대 새벽회, <새벽> 1, 1975.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2, 2004.
  • 김정남, 《진실, 광장에 서다》, 창비, 2005.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엮음, 《한국민주화운동사》 2, 돌베개, 2009.
  • 신동호, 《70년대 캠퍼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청년들의 이야기 》1, 도요새, 2007.
  • 이재오, 《해방후 한국학생운동사》, 형성사, 1984.
  • 이화민주동우회 이화학생운동사 편찬위원회·김현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운동사》, 백산서당, 2021.
  • 이화100년사편찬위원회, 《이화100년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4.
  • 정선자, 정경임 구술: 신동호 면담, 2004. 6. 16.
  • 이형랑 구술: 신동호 면담, 2004. 6. 23.
집필정보
집필자
신동호
집필일자
2024-11
최종수정일자
2026-08-26 09: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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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새벽지사건
  • 설명 '김지하 양심선언'을 수록한 총 32쪽 분량의 <새벽> 1호(신동호 제공)
  • 출처 신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