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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대전학생시위

이승만정권기 > 4월혁명
대전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 참가 대전고등학교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유형
사건
분류
학생운동
동의어
3.8대전민주의거, 3.8민주의거
영어표기
The March 8 Student Protest in Daejeon
한자표기
三八大田學生示威
발생일
1960년 3월 8일
종료일
1960년 3월 10일
시대
이승만정권기 ‣ 4월혁명
지역
대전

개요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권이 학생들을 선거에 동원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이에 반발한 대전 시내 고등학생들이 3월 8일부터 10일까지 벌인 시위 사건이다. 정부 수립 이후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자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서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배경

이승만(李承晩) 정권의 민심을 외면한 국정 운영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었다. 대전지역의 경우, 그 불만의 정도가 더 컸다. 1956년 정부통령선거 당시, 전국적으로 이승만이 약 70%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대전에서는 이승만 50.7%, 조봉암(曺奉岩) 49.3%로 거의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부통령 선거에서도 야당 후보 장면(張勉)이 여당 후보 이기붕(李起鵬)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전의 2개 선거구에서 자유당과 민주당 후보가 각각 1명씩 당선되었다. 개표 과정에서 많은 부정이 있었음에도 자유당 후보는 힘겹게 당선된 반면에 민주당 후보는 낙승한 사실로 보아,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전 시민들의 반감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승만 정권은 1950년대 학교를 학도호국단 체제로 병영화하고 학생들을 각종 관제 시위에 동원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59년 10월 대전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환영행사를 위해 대전 시내 학생들과 시민이 강제 동원되기도 했다.주)001

이승만 정권의 학원 통제는 1960년 3‧15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더욱 강화되었다. 정권에 비판적인 충남 지역 학교장과 교감을 섬이나 산간벽지로 전출시켰고, 교사들에게는 각 가정을 방문하여 공공연하게 자유당 선거운동을 펼치게 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과거 미국에서 연설했던 녹음 방송을 듣거나 이기붕의 활동 소식을 담은 뉴스영화를 강제로 관람해야 했다.

특히 대전 지역 학생들은 정부통령선거 몇 해 전부터 정부 기관지였던 《서울신문》을 학급비로 강제 구독하고 있었다. 이는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 중 하나였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내에서 사복경찰에게 매일같이 감시를 당했다.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현실 사회의 비민주성 사이에서 괴리를 통감한 학생들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학생 시위를 지지하며 저항 의지를 키워나갔다.

원인

1960년 정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3월 8일은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선거유세 예정일이었다. 유세 하루 전날인 3월 7일 오전, 대전고등학교 박관수(朴寬洙) 교장은 학생 간부들을 교장 관사로 불러, 다음 날 열릴 장면 후보 유세에 한 사람도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이승만 정권이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하는 데 불만을 터뜨리며 민주당 장면 후보 유세일에 시위를 갖기로 결의하고 이를 결행했다.

한편 민주당 선거유세 이틀 뒤인 3월 10일에는 대전에서 자유당 선거유세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틀 전 대전고 학생들의 시위에 자극받은 대전상고(현 우송고) 학생들은 자유당 선거유세 일정에 맞춰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가 새어 나가 거사 당일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연행되었고, 이에 반발한 대전상고 학생들이 시위를 결행했다.주)002
대전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 참가 대전고등학교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전개

3월 8일 시위

3월 7일 오전, 교장의 지시가 있은 뒤, 대전고 학생 간부들은 방과 후에 같이 모여 다음 날인 8일에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7일 저녁 8시경, 대전고 학생들은 다른 학교의 동정을 살핀 후, 대전고 단독으로라도 시위를 결행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결의문과 구호를 작성했다. 8일 오후 2시 예정된 민주당 정견 발표회를 고려해 그곳에 모일 시민들의 성원을 예상하고 시위 시간을 3시로 결정했다.

그러나 3월 8일 오전, 이미 시위 계획을 탐지한 교장은 1, 2학년 학생대표 19명을 교장 관사로 불러 시위의 부당성을 설교하고 학생대표들을 감금했다.주)003 그러나 5교시가 시작될 무렵, 몇몇 학생대표들은 교장 관사를 빠져나와 교내로 들어갔다. 이들은 밖에 나와 기다리던 200여 명의 학생들과 교실에 남아 있던 학생들을 규합했고, 이에 전교생 1천여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생들은 먼저 교장 관사로 달려가, 감금당한 학생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어 학생들은 “①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② 학원의 자유를 달라, ③ 학원에서의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④ 우리의 말을 억제하지 말라. ⑤ 《서울신문》 구독을 강요하지 말라.”는 5개 항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민주당 장면 후보의 강연 장소인 공설운동장으로 향했다.

학생들은 당초 ‘학교→공설운동장→인동시장→대전 전신전화국(현 원동네거리 KT대전지점)→대전역→도청→학교’로 시위 코스를 계획했으나 얼마 못 가 공설운동장 앞에서 무장경찰과 충돌하였다. 공설운동장로부터 약 200m 앞까지 진출한 300여 명의 학생은 기마경찰에게 곤봉과 장총 개머리판으로 머리와 허리 등을 구타당했다. 유혈 진압 끝에 학생들은 경찰 백차로 연행되었다. 이때 문창동 75번지 판자 울타리는 경찰과 학생의 육박전으로 모조리 부서졌다.주)004

학생들은 대전역에 이르러 다시 경찰과 충돌했다. 학생들은 돌을 던지며 경찰에 대항했지만, 백차와 기마순경, 소방차를 동원한 경찰에게 시위를 저지당했다. 이때부터 스크럼이 무너져 학생들은 두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대전천을 따라 중앙시장을 거쳐 중교(中橋)를 건너 대전서여고 앞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버스합동주차장에서 경찰과 잠시 대치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줄 것을 경찰에게 요구한 뒤 학교로 돌아갔다.

다른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경찰에 저항하다가 목척교 맞은편 신도극장 사잇길(현 목척교를 중심으로 중동 방면의 천변도로)로 빠져, 다른 학교와 합세할 목적으로 보문고등학교로 달려갔으나 교문은 닫혀 있었다. 다시 선화교(현 영교)를 건너 대전시청(현 중앙로 네거리 동양백화점[갤러리아] 맞은편 삼성 건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방을 포위당한 학생들은 결국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경찰은 구타당하는 학생을 구하려 한 교사 1명과 40여 명의 학생을 연행했고, 대전고 교실에 40여 명의 학생을 강제 수용했다.주)005
3.8대전학생시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은 교내 농구장에서 학생 간부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고, 현장에 있던 경찰서장이 연행된 학생들을 즉시 석방할 것을 약속한 뒤에야 해산 후 귀가했다. 시위가 모두 진압된 뒤에도 대전 시내 전 경찰은 삼엄한 경계를 펴는 한편, 시위 주모자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을 모두 석방했다며 사건을 표면상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주모자로 분류된 학생 5명은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취조를 당하며 배후를 추궁받았다.

3월 10일 시위

3월 8일의 대전고 학생 시위에 이어, 10일 대전상고(현 우송고) 300여 명이 오전 9시 30분경, 학교 조회를 마친 후 대열을 지어 교문을 나섰다. 학생들은 “학원의 자유를 달라”, “친구들을 빨리 내놓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전경찰서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의 발단은 경찰이 3월 10일 새벽 대전 지역 일부 학생을 연행한 데 있었다. 3월 9일, 대전고 4명과 8일 시위에 가담하지 못한 대전공고(현 대전도시과학고) 9명, 그리고 대전상고 12명이 회합을 가졌다. 대전에서 자유당의 유세가 열리는 10일에 맞춰 시위를 모의했는데,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10일 새벽 4시에 이들을 경찰서로 연행했던 것이다. 연행된 학생들은 오전 9시에 석방되었지만, 미처 소식을 접하지 못한 다른 학생들은 경찰 연행에 반발하며 시위에 나섰다.

대전상고는 도청에서 약 3km 떨어진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아침조회가 끝난 9시 30분, 학생들은 대열을 지어 대전경찰서로 시위행진을 벌였다. 학교에서 약 800m 떨어진 대전시청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대열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한 무리는 중앙시장 쪽으로, 다른 한 무리는 역전 쪽으로 향했다. 무장경찰과 상이군경회가 시위를 폭력 진압하려고 하자, 학생들은 돌을 던지며 저지선 돌파를 시도하였다. 이날 시위로 약 50명의 학생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5~6명의 학생이 부상을 입었다.주)006

결과/영향

대전에서 1960년 3월 8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학생 시위가 일어난 후, 검찰과 경찰은 공동으로 경고담화문을 발표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므로 앞으로 발생하는 학생 시위를 엄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주)007 이는 학생들과 시민을 위축시켰고, 이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때까지 대전에서는 거의 시위가 발생하지 않았다.

주)001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정근식·이호룡 공편, 《4월혁명과 한국민주주의》, 선인, 2010, 89~93쪽. 
주)002
대전‧충남민주화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대전‧충남 민주화운동사》, 선인, 2016, 48~53쪽. 
주)003
이날 감금된 학생대표가 11명이었다는 보도도 있다(《한국일보》 1960. 3. 9. 조3면). 
주)004
《동아일보》, 1960. 3. 9.(석간) 
주)005
《동아일보》, 1960. 3. 9.(조간). 《동아일보》 보도와 달리,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는 이날 연행된 학생이 61명이라고 밝혔다(《조선일보》, 1960. 3. 9.조간);《한국일보》, 1960. 3. 9.(조간)). 약 50명이었다는 기록도 있다(안동일·홍기범,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80쪽). 일부 기록은 2명의 교사와 100여 명의 학생이 검거되었다고 서술했다(조화영 편, 《4월혁명 투쟁사》, 국제출판사, 1960, 279~291쪽). 
주)006
안동일·홍기범, 위의 책, 83쪽. 일부 기록은 학생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서술했다(조화영 편, 위의 책, 279~291쪽). 
주)007
《서울신문》, 1960. 3. 10.; 《대전일보》, 1960. 3. 11.; 《중도일보》, 1960. 3. 13.; 《동아일보》, 1960. 3. 13.; 안동일·홍기범, 위의 책, 82쪽) 
기념 계승 현황
[기념 행사]
3.8학생백일장
기념 단체
(사)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3.8민주의거기념식
기념 단체
(사)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인정 내용
국무회의
심사일
2018.10.30
확정일
2018.11.02
인정 내용
국가기념일 지정(대통령령 제29271호)
국회
심사일
2013.04.29
확정일
2013.05.22
인정 내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 개정 공포
대전광역시
확정일
2009.10.09
인정 내용
3.8민주의거기념일 제정 조례 공포
멀티미디어
  • 3.8대전학생시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 대전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 참가 대전고등학교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참고문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월혁명 사료 총집 1: 일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1: 제1공화국부터 제3공화국까지》, 돌베개, 2008.
  •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 역사비평사, 2007.
  • 안동일·홍기범,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 이강현 편, 《민주혁명의 발자취: 전국 각급 학교 학생대표 수기》, 정음사, 1960.
  •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정근식·권형택 공편, 《지역에서의 4월혁명》, 선인, 2010.
  •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정근식·이호룡 공편, 《4월혁명과 한국민주주의》, 선인, 2010.
  •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대전·충남4월혁명동지회, 《50년: 3.8민주의거》, 오름, 2010.
집필정보
집필자
오제연(주 집필자), 이소라(초고 작성)
집필일자
2022-06
최종수정일자
2023-08-23 10: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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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정치적 의도는 없다">, 《동아일보》, 1960. 3. 9.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경찰과 한때 육박전>, 《동아일보》, 196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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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공업고등학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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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대전학생시위
  • 설명 대전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 참가 대전고등학교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 출처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