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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사항
[신규서비스]긴급조치 4·7·9호기(일부) 23항목 서비스 개시
  • 등록인 odop@youhasoft.com
    등록일 2026.08.25
    조회수 86
  •  

    <민주화운동사전> '긴급조치 4·7·9호기(일부)‘ 23항목

    2026.8.26. 서비스 개시


    <민주화운동사전>이 긴급조치4·7·9호기(일부) 신규항목 서비스를 개시합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3.1민주구국선언'을 포함해 자유언론실천운동, 1975년 봄 학원민주화투쟁 등 유신체제 중기 저항과 탄압의 주요 흐름을 <사전>에 담았습니다. 그동안 저항운동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975년 4월 긴급조치 7호 발동의 역사 현장을 <민주화운동사전>을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좌) "고대에 휴교령" 대통령긴급조치 7호 선포(경향신문, 1975. 4.8.)
    (우) 1975. 5.13. 긴급조치 9호 선포(대한뉴스 1031호, 한국정책방송원)

     

    1975년 봄, 학원민주화투쟁


    1975년 2월 긴급조치 4호 위반 구속자들이 석방되면서 봄부터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반유신운동이 격렬히  일어났습니다. 도서관 점거농성으로 저항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4·7 고려대도서관점거농성사건', 유신헌법의 폭압성을 고발하며 자결한 '김상진 양심선언·자결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유신 권력은 ’긴급조치 7호(1975.4.8.)‘를 발동해 ’고려대학교‘를 무력진압합니다.  '김지하 양심선언 사건'과 인권변호사를 반공법으로 구속한 '한승헌 필화 사건', 종교계를 겨냥한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탄압사건‘ 은  유신중기 사상·양심의 자유를 억압한 대표사례입니다. 
     

    [바로가기] 1975년 봄 학원민주화투쟁
    [바로가기] 4·7 고려대도서관점거농성사건
    [바로가기] 김상진 양심선언·자결사건
    [바로가기] 김지하양심선언사건
    [바로가기] 한승헌필화사건
    [바로가기]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탄압사건
    [바로가기] 긴급조치 7호 선포

     

    (순서대로)
    서울대 농대 서클 한얼 수련회에 참가한 김상진(김상진기념사업회)
    ‘1975년 4월 7~8일 고려대생들의 격렬 시위’(고대신문사) 
     ‘4.7고려대도서관점거농성’(고대신문사)
    ‘긴급조치 7호와 고려대 앞 무장 군인’(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반공법 위반으로 재판받는 한승헌 변호사(한승헌 유족 제공)
    1975년 5월 19일 반공법위반사건 첫 공판에 출석한 김지하(경향신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유신 중기 자유언론실천운동의 기록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와 검열에 맞선 언론인들의 저항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습니다.  '언론자유수호선언(1973)', '10·24자유언론실천선언(1974)'을 비롯해 해직과 저항의 ‘동아·조선투위사건, 국민 저항 동참을 이끌어 낸 '동아일보격려광고운동', 언론자유 수호의 두 기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까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저항의 여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언론자유수호선언(1973)
    10.24자유언론실천선언(한국기자협회)
    조선투위의 시위 현장(조선투위)
    10.24자유언론실천선언(동아투위)
    ‘엠네스티 한국지부 창립총회’(엠네스티 한국지부)
    국민들이 참여한 ‘동아일보격려광고운동’(영등포산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바로가기] (상위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바로가기] 언론자유수호선언(1973)
    [바로가기] 10·24자유언론실천선언(1974)
    [바로가기] 동아·조선투위사건
    [바로가기] 동아일보격려광고운동
    [바로가기] 문학인101인선언
    [바로가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바로가기]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바로가기] 엠네스티 한국지부


    긴급조치 9호 선포, 더 강해진 억압과 이어진 저항

     

    계속된 국민 저항에 박정희 정권은 한층 강화된 탄압 수단인 '긴급조치 9호(1975.5.13.)'를 선포해 한국민주주의 최대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긴급조치 9호 첫 위반 시위인 '김상진추도식시위(오둘둘 사건)'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대규모 학생들이 구속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학생총연맹사건‘, 유신 비판 유인물 배포 사건인 '이화여대새벽지사건', 국회의원의 발언마저 통제했던 '김옥선의원 제명사건'을 통해 긴조9호 초기 탄압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김상진 추도식 시위(오둘둘 사건)
    [바로가기] 천주교정의구현전국학생총연맹사건
    [바로가기] 이화여대 새벽지 사건
    [바로가기] 김옥선 의원 제명 사건

     

    (순서대로)
    긴조7호 해제·긴급조치 9호 선포(1975.5.13.)
    지하유인물 ‘새벽 1호’(신동호 제공)
    국회 발언하는 김옥선 의원(경향 포토뱅크)
    김옥선의원이 비판한 1975년 관제안보궐기대회(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0년 전 명동성당의 외침, '3.1민주구국선언'

     

    긴급조치 9호에 맞선 종교계와 재야정치세력의 '민주회복선언'은 1976년 ‘1.23원주선언’에 이어 3월 1일 '민주구국선언'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문익환이 초안 작성과 서명자 규합에 힘을 쏟은 이 선언은 '유신헌법 철폐', '긴급조치 해제', '민주주의 회복', '국민 기본권 보장' 등의 요구가 담겼습니다. 윤보선, 김대중, 정일형 등 정치인과 함석헌,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함세웅, 이문영, 이우정, 신현봉, 윤반웅 등 유신체제기 재야 지식인·종교인이 대거 구속된 이 시국사건의 50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사전>이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조명합니다.

     

    [바로가기] 1.23원주선언
    [바로가기] 3.1민주구국선언

    (긴조9호기 사전항목은 계속 됩니다)

     

    (순서대로)
    일본에서 만든 3.1민주구국선언 관련자 석방촉구대회 포스터(정금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갈릴리교회 주역들(안병무, 서남동, 문동환, 이문영)(문동환 가족 제공)
    3.1민주구국선언 사건 구속자 가족들의 시위(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제공)
    3.1민주구국선언사건 변호인단과 피고인의 가족들(문동환 유족 제공)



    탄압이 커질수록 저항도 깊어진 유신 중기 민주화운동 역사의 순간들을 <민주화운동사전>을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한국민주화운동의 교과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만들어 갑니다.